▲ 이건수 비엔날레 아카이브展 큐레이터

“‘해외 비엔날레에 진출한다’는 것이 뭐냐면, 이것은 단순히 작품 하나를 출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있는 도시 혹은 나라의 분위기, 문화와 교류하는 것이거든요.“

Q1. 부산비엔날레가 개막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 간 비엔날레 아카이브展에 많은 관람객들이 다녀갔는데요, 아직 다녀가지 않은 관람객들을 위해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한국 작가들이 최초로 참가했던 해외 비엔날레는 1958년 <제5회 국제현대색채석판화비엔날레>입니다. 그러나 이번 비엔날레 아카이브展은 미술의 전 영역을 다루는 비엔날레로서 1961년 <파리청년작가비엔날레>를 시점으로 삼았습니다.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현대미술이 비엔날레라는 국제적 전시시스템과 어떤 상호연관 속에서 성장해 왔는지 일괄하고, 지금 이 시대의 비엔날레가 지닌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전시입니다. 이 전시를 통해 벌써 8회째를 맞이한 <부산비엔날레>가 담아야 할 현대미술의 모습은 무엇이며, 또 앞으로 어떤 비전으로 전개되어야 할 지, 비엔날레 자체를 성찰하는 메타전시적인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즉, 비엔날레 전시로서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우리 전시의 주요 특징이지요.

전시장의 작품 자체는 관람객들과 소통의 모티프로서 역할하고, 우리 전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아카이브’입니다. 즉 책(도록)과 작가들과의 인터뷰 영상들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상의 소통 또한 중요한 맥락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작가들의 인터뷰 영상은 현재 유투브에서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아카이브들이 나중에도 이 전시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현대미술 진출사를 다루는 전시들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시장을 주마간산 식으로 둘러보고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은 데, 좀 더 시간을 투자해서 작가와 작품, 또 비엔날레 자체에 대한 성찰과 공부의 시간이 늘어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관람객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전시장인 부산문화회관 대전시실의 아카이브방에서 인터뷰, 도록 자료 등을 보시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고, 이렇게 한국의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흔히 말해 올스타 명품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전시가 부산에서는 흔치 않으니 특히 부산 시민들이 많이 찾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Q2. 이번 2014부산비엔날레의 전체 주제와 비엔날레 아카이브展이라는 특별전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특별전’의 성격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은데, 세상의 수많은 비엔날레들이 정말 다양한 전시를 ‘특별전’에서 진행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면 아주 참신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만 모아놓은 특별전도 있고, 이미 출품했던 작가들의 역사적인 작품들로 하는 특별전도 있지요. 또 특정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적인 전시도 있습니다. 특별전은 특별전인 것입니다. 얼마 전 열린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하랄트 제만의 <태도가 형식이 될 때>라는 오래된 전시를 리메이크 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서 관람하던 풍경을 기억합니다.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는 한국 현대미술, 특히 한국 작가들의 해외 비엔날레 진출사를 ‘아카이브’적으로 구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특별전에 큐레이터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비엔날레 아카이브展은 ‘Voyage to Biennale - 한국 현대미술 비엔날레 진출사 50년’이라는 주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외 비엔날레에 진출하였던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아주 인상적인 활동을 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전시입니다. “해외 비엔날레에 진출한다”는 것이 뭐냐면, 이것은 단순히 작품 하나를 출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있는 도시 혹은 나라의 분위기, 문화와 교류하는 것이거든요. ‘비엔날레’라는 하나의 시스템/제도를 통해서 이질적인 개인과 민족, 사회가 서로 겹쳐지고 얽히면서 교류할 수 있는 영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의 문화가 어느 곳으로 항해해서 일정 기간 동안 정박을 하고 타문화와의 교류를 통해 또 하나의 역사와 분위기를 수용하는 것은, 그 자체 정지되고 박제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비엔날레라는 새로운 장소와 시간 속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외국 작가가 한국의 비엔날레에 출품하는 경우도 마찬가지겠지요. 이런 상호 교류 속에서 이번 2014부산비엔날레 전체 주제와 같은 맥락인 ‘세상 속에 거주하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Q3. 비엔날레 아카이브展에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작가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어떤 기준에서 작가 선정을 하였으며, 그 중에서 눈여겨 봐야할 작가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번 작가 선정의 기준은 작고작가와 해외 거주 작가가 제외된 것이 유감입니다만, 전시 기획 의도에 따라 해외 비엔날레에 많이 출품했던 작가들과, 그 해외 비엔날레에서 인상적인 업적을 남겼던 작가들이지요. 이미 다 알려진 작가들의 알만한 작품들을 모았다는 평도 있는데, 알다시피 이 전시는 해외 비엔날레에 진출하였던 유명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전시입니다. 그래서 전시주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연히 한국을 대표하는 잘 알려진 작가들이 출품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비엔날레 ‘특별전’이 있고 이번 2014부산비엔날레의 ‘비엔날레 아카이브展’ 역시 그런 관점으로 보시면 될 것입니다. 저는 전 세계 수많은 성격의 비엔날레를 직접 가장 많이 목격한 사람들 중의 한사람입니다. 비엔날레를 잘 이해 못하고 비엔날레에 대한 그들 자체의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항상 실험성과 지역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 밖에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자회견이고 프레스투어를 통해서 한 번의 질문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저 잠깐 동안의 전시장 투어를 하고 간단한 인상을 기사화한 언론의 태도에 실망했습니다. 공부하지도 않고 그저 보도자료에 자신의 인상만을 남긴 극히 주관적인 인상비평식의 기사가 넘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또 비엔날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내용이 다뤄지지 않고 그저 오프닝 때에 맞춘 단 한 번의 기사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비평은 비엔날레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사들 중에서 우리나라 대가뿐만 아니라 현재도 활발히 전시하고 있는 강애란, 권오상, 최우람, 최정화 등의 작가들이 출품하여 기획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 역시 동의하기 힘든 것이 이 작가들 모두 젊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베니스비엔날레, 세비야비엔날레, 리버풀 비엔날레 등의 해외비엔날레에 출품하여 우리 현대미술사를 이어가고 있는 실체임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섭외한 것이구요. ‘보은 전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데, 비엔날레가 어찌 그런 사적인 의도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아마도 그런 전시를 많이 겪어 본 사람이었나 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전시 자체가 한국 현대미술에서 빠질 수 없는 작가들이 출품하는 것이 이번 비엔날레 아카이브展의 기획 의도이고 당연히 국내 시장에서 유명한 작가들이 섭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출품작가 모두가 너무 한국 현대미술에 큰 공을 세우신 분들이라 특별히 눈여겨봐야할 작가를 꼽기는 좀 그렇고요. 몇 분의 예를 들자면 1961년 파리청년작가비엔날레에 출품함으로써 본격적인 메이저 비엔날레 진출 1호인 김창열 작가, 1975년 역시 파리청년작가비엔날레에서 닭 퍼포먼스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강소 작가, 1979년 상파울로비엔날레에서 ‘달팽이 걸음’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이건용 작가, 1992년 카셀도쿠멘타에 한국인으로서는 첫 초청을 받은 육근병 작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로 선정되어 국내 최초로 특별상을 받았던 전수천 작가, 비엔날레의 여왕이라고도 불리는 김수자 작가 등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들이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다양한 세대의 작품들을 보여주기 위해 원로 작가뿐만 아니라 신기운 작가, 권오상 작가, 정연두 작가 등 젊은 작가의 작품들 역시 출품되었습니다. 신구 작가들을 비교해보며 전시를 관람해도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 이건수 큐레이터와 권달술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 직무대행

“원로 작가들의 경우, 말씀을 많이 하지 않으셔도 정말 필요한 말씀들을 하셔서 연륜을 느꼈고, 젊은 작가들을 인터뷰하면서는 한국 작가들도 국제 경험을 쌓아가고 네트워크가 좋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보아 좋았습니다.”

Q4.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이 그 작가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어떤 기준에서 작품을 선정하셨는지요?

작품 선정 과정에서 가장 염두에 둔 점은 참여작가들의 당시 해외 비엔날레 출품했던 해당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 출품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실물작품들이요. 그래서 직접 한 분 한 분 작가 모두와 다 연락하고 인터뷰하고 한 결과 48명 작가 중 30여 명 작가의 실제 해외 비엔날레에 진짜 출품했던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 출품할 수 있었죠. 언론에 보도되었던 것과 같이 실물자료를 찾기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48명 중 30여 명이 그 당시 실제 출품된 작품들이구요, 또한 나머지 작품들도 그 시대 해외 비엔날레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작품들 또는 재현한 작품들입니다. 예를 들면 곽훈 작가의 <What Marco Polo left behind>라는 작품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하였던 작품의 항아리는 그대로 쓰고, 나무는 새로 만들어서 다시 제작한 것입니다. 또한 이강소 작품 같은 경우에도 예전 출품하였던 작품과 그 맥을 같이 하는 최근 작품을 같이 배치하였습니다. 실제 닭을 전시장 안에서 묶어 놓는다는 것은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거니까요. 오프닝 행사에서 재연한 이건용 작가의 <달팽이걸음> 퍼포먼스 작품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신작들도 있습니다. 최정화 작가의 <과일나무>라던가, 전수천 작가의 <시간여행>, 곽훈의 <도피안>과 같은 작품들은 이번 2014부산비엔날레를 위한 신작입니다. 그러나 모두 오리지날 전시와 형식상 구성상 맥락을 같이하는 작품들입니다.

Q5.워낙 유명한 작가들의 대표작들이라 작가와 작품 섭외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섭외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있다면...?

최종 참여작가가 48명인데, 원래는 55명 정도를 섭외하고 싶었습니다. 조율 과정에서 출품하지 못하시는 분도 생기고 뭐 이런저런 이유로 추려진 것이죠. 사실 예산 문제와 전시장 문제도 있었구요. 지금 전시장인 부산문화회관이라는 공간은 상당히 오래된 공간이기도 하고 못 하나 마음대로 제대로 칠 수 없는 공간이라 공간 활용에 대한 고민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합판을 대고, 원래 공간에 있던 기둥 6개를 대벽으로 잇고 대공사를 하였습니다. 총 2억 정도의 예산이 소요되었는데, 이러한 전시장 조건 속에서 공사와 운송 예산만 해도 전체 예산의 3분의 1이 넘게 투입되었지요. ‘비엔날레’라는 큰 전시에서 한정된 예산으로 전시장 공사비용과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섭외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2억 가지고는 사실상 불가능한 전시였죠. 하지만 작가들이 잘 협조해주어 이렇게 오픈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섭외 과정에서는 에피소드라기보다 원로 작가뿐만 아니라 젊은 작가들도 참여하여 신구를 아우르는 전시를 하고 싶었습니다.

Q6. 비엔날레 아카이브展 출품작가 48명 모두를 직접 인터뷰하셨다고 들었는데, 이번 전시의 취지를 잘 살린 기획으로 생각됩니다. 혹시 기억에 남는 인터뷰나 내용이 있으시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인터뷰는 아카이브적 전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저랑 영상을 제작한 신기운 작가랑 직접 작가들 작업실을 에어컨도 없는 차를 타고 다 돌면서 6월에서 8월까지 여름 내내 만든 작업물입니다. 각 작가마다 50분∼1시간 분량을 녹화했으니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처음 만나는 작가들도 꽤 많았고, 처음 작업실로 찾아가는 작가도 많았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중점을 두었던 부분이 제가 가급적이면 적게 끼어들고 작가들이 최대한 많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작가들이 논리정연하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는데, 특히 사진작가들이 굉장히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또한 김창열 작가와 같은 원로 작가들의 경우, 건강이 좋지 않아 인터뷰 과정에서 어려움이 좀 많았는데, 말씀을 많이 하지 않으셔도 정말 필요한 말씀들을 하셔서 연륜을 느꼈고, 젊은 작가들을 인터뷰하면서는 한국 작가들도 국제 경험을 쌓아가고 네트워크가 좋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보아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박서보 작가나 김창열 작가 등의 원로작가로부터 그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었습니다. 또한 윤명로 작가의 경우 김포공항 유실물센터에서 해외에 출품되었다가 되돌려받지 못한 작품을 찾고 했던 그 옛날의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이번 비엔날레 아카이브展의 도록과 인터뷰 영상은 기본적으로 작품을 소개하는 정도의 도록(또는 영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도큐멘타 또는 아카이브적 기록이 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를 다 뽑으면 거의 A4용지를 책상위에 쌓아 1미터가 될 정도지요. 어쨌든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 인터뷰와 도록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9월 19일에 있었던 프레스 오프닝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의 해외 진출사를 다루는 전시이다 보니 특히 외신에서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후지카와 사토시(Fujikawa Satoshi, 일본, 야마구치대학교, 미술사학 교수), 크레이그 주드(Craig Judd, 호주, 아트링크, 기자) 등이 이번 전시가 의미 있는 전시라고 평가해주었을 때는 많은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루오 슈인(Luo Shuyin, 중국, 야창예술망, 기자)과는 1시간여 동안 전시와 한국미술계에 대해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전시의 의미를 오히려 외국인들이 찾아보려 노력한다는 데서 아이러니를 느끼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