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야외 공간에서 전시를 하기 위해 고려할 많은 요소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전준비를 하셨나요?

전시 준비단계에서부터 작가들과 다대포 현장을 자주 방문하였습니다. 바다미술제에서의 '바다'는 작품이 놓이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작품과 호흡하는 공간이자 상상력이 실현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므로 바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3박 4일동안 현장설명회와 작업장 투어를 진행하며 다대포 바다의 장소적 특성에 대해 작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작품의 안전성에 대한 논의를 거듭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숱한 경험을 통해 야외전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대대포 바다의 장소성이 작품들에 잘 반영될 수 있었고, 아무런 사고나 인명피해 없이 전시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이번 바다미술제에 전시감독으로 참여하시기 전에, 출품(1989년), 기획위원(2011), 자문위원(2013)을 거치셨습니다. 누구보다 바다미술제에 대한 애착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좌) 도태근 전시감독의 1989년 바다미술제 출품작. 10m크기의 안경 형상의 작품으로 알 한쪽에는 알을 통해 보일 법한 풍경을 그리고, 나머지 한 쪽은 테두리만 남겨 실제 풍경을 보이게 함으로써 가상과 실재에 대해 표현하였다.
(우) 2002년 바다미술제 출품작 <공간의 휴식>. 해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관념을 탈피, 바다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서 설치된 소파에 앉아 바다 반대편 전경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올해는 바다미술제가 30년을 맞이한 뜻 깊은 해입니다. 1987년 88서울올림픽의 프레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시작하여 국내의 대표적인 자연환경미술제로 자리매김한 지금까지, 바다미술제의 30년을 돌아보게 됩니다. 1987년의 첫 바다미술제는 관람객으로서 참여했습니다. 이후 1989년과 2002년도의 바다미술제에는 참여 작가로서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이 외에도 바다미술제가 개최될 때마다 스태프, 현장설치 등의 경험을 통해 바다미술제와의 연을 이어갔습니다.
2000년 이후 바다미술제가 부산비엔날레에 통합이 되었을 때, 바다미술제에 대한 지원과 관심부족으로 인해 우리가 사랑하고 함께 성장해온 바다미술제의 정체성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를 필두로 바다미술제의 독립개최를 계속해서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 2011년을 첫해로 바다미술제가 독립 개최되었고, 당시 기획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바다미술제의 시작을 관람객으로 함께하여 출품작가, 기획위원, 자문위원을 거쳐 전시감독직을 맡기까지, 저는 꾸준히 바다미술제의 역사와 함께 해왔고, 함께 해온 시간만큼 바다미술제에 대한 애착 또한 남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면, 부산비엔날레와 바다미술제가 투트랙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포커스가 부산비엔날레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산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최전선을 다루는 담론의 장으로서, 바다미술제는 시민과 호흡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예술제로서 각자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바다미술제에도 보다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고 생각합니다.
Q) 오픈 약 1주일 전에 폭우가, 프레스오픈과 개막식날에는 태풍이 불었는데요. 자연환경예술제인만큼 자연의 위대함에 대해 다시 느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가요.

우선 다행스럽습니다. 차가 잠길 정도로 폭우가 쏟아진 날, 걱정되는 마음에 이른 아침인 6시 30분부터 다대포 바닷가 현장을 지켰습니다. 200mm의 비가 쏟아지는데 다대포 백사장이 갯벌로 되어있어 배수가 잘 되지 않는 상황이라 우려가 되었습니다만, 다행히 모든 작품이 설치되지는 않은 상황이라 위기를 넘겼습니다. 안도하는 것도 잠시, 개막을 앞두고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심하게 불어 심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현장에서 작품이 날아가지 않도록 작품을 붙잡고 기반을 더욱 튼튼하게 조성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개최 이후 전시 기간의 반 이상이 지난 경우에는 태풍으로 인해 작품이 파손되어도 재제작이 불가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개막 초에 태풍이 지나가고 이후에는 무탈하게 전시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다미술제가 개최되는 9월과 10월간, 부산은 항상 태풍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태풍의 위험에서 벗어난 5월중에 바다미술제를 개최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가장 애착 가는 작품 몇 가지만 꼽아주신다면요?

출품된 모든 작품이 각자의 방식으로 유희라는 속성을 잘 나타내고 있고 참 소중합니다만, 굳이 꼽자면 자연 소재를 이용한 작품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연미술제에 자연적인 물성의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이 잘 어우러질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번 바다미술제에서 보니 자연적인 소재들을 이용한 작품 강인구 작가의 <바위, 바다를 만나다>와 안치홍 작가의 <울림>이 바다라는 자연 공간과 조화를 잘 이룬다고 느꼈습니다. 권정호 작가의 <시간의 거울 4>는 사실 기획단계에서 고민이 많았던 작품입니다. 일반적으로 '해골' 형상이 가지는 거부감과 죽음을 의미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 작품이 전시주제에 부합할 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만, 막상 작품을 설치하니 관람객들이 전혀 꺼려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시대가 변하며 관람객들의 정서와 작품을 수용하는 태도 또한 변한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는 시민들과 더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통해 호흡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태국의 분커드 작가의 경우 3주 동안 작업장에서 한결같은 열정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작업에 대해 보여준 책임감에 같은 작가로서 큰 공감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Q) 전시장 현장을 줄곧 지키시며 시민들을 직접 만나며 소통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관람객이 있으시다면요?
제가 사실 전시기간 동안 저녁 다섯시 이후에 혼자서 다대포해수욕장을 거닐면서, 바다미술제를 방문한 시민분들과 바다미술제를 방문한 동기, 관람한 소감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어느 날, 홀로 바다미술제를 관람하며 작품과 본인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하던 한 관람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분께 바다미술제를 관람하시게 된 동기에 대해 여쭤보았습니다. 그분은 부천에서 오신 분이었고 다대포의 일몰이 유명하여 다대포를 방문하였다가 말 그대로 '일거양득'으로 바다미술제가 전시 중에 있어 관람하게 되었다고 답하였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전시를 관람하게 되어 굉장히 기쁘고 황홀하다는 말씀과 더불어 해수욕장에서 작품을 상시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산이 아닌 타도시에서 방문한 분으로부터 바다미술제의 취지와 주제에 대한 공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경험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Q) 전시 준비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유희적 순간’은 언제였나요?
두 가지 순간이 떠오르는데요. 첫 번째 순간은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30여분을 기다리는 행렬들을 지켜보던 순간입니다. 관람객 분들이 유희를 경험하는 순간을 지켜볼 때가 전시감독인 저에겐 유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작품 설치과정에서 느낀 유희의 순간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거세게 불어 작품이 넘어가려해 작품을 붙잡고 30분을 버티고 있었을 때가 기억에 남습니다. 거센 비바람을 마주하며 이 역시 자연환경예술제로서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며 유희적인 순간으로 승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소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험이지만, 두 순간 모두 유희적 순간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